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라야마 담화 (문단 편집) === 한국 === [[한국]]에선 발표 당시 기준으론 그나마 제대로 된 사과 중 하나로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고, 반대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하는 견해도 있었다. 특히 [[일본어]] 특유의 절제적 어조가 좀 더 직설적인 한국인의 언어 감각으로 보기에는 영 미지근하게 느껴져서 그런 점도 있고, 이 담화가 어디까지나 '''도의적 책임'''만 인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물론 무라야마 개인은 직접 전쟁을 겪은 일본 [[좌익]] 계열 인사인 만큼 진심어린 사과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있지만, 도의적 책임으로 일축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자민-사회당 연립 정권에서 나온 담화라 무라야마 개인의 성향을 떠나 좌우의 여러 목소리가 담긴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遠くない過去の一時期)' 같은 애매한 표현이 있어, 식민지배와 전쟁이 대체 언제를 가리키는 건지 해석이 갈리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식민지배까지 사과를 하는 것인지,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의 침략 전쟁만을 '식민지배와 전쟁'이라는 말로 뭉뚱그리는 것인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식민지배'나 '침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식민지 관련 '''첫 정부 공식 사과'''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2010년에 발표한 [[간 담화]]는 확실하게 1910년 이후의 조선 식민 지배를 사과했다.] 당시 [[경향신문]]에서는 천황의 전쟁 책임을 회피하고, 보상 요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81600329103003&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5-08-16&officeId=00032&pageNo=3&printNo=15512&publishType=00010|#]] [[동아일보]]는 다른 목적을 가진 '형식적 반성' 아니냐고 비판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60800209104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6-08&officeId=00020&pageNo=4&printNo=22876&publishType=00010|#]] 한편,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 방문 당시 [[아키히토]] 천황의 '통석의 염' 발언을 한 사례처럼 사죄로 번역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과로 번역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일부 논란이 있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82000329102012&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5-08-20&officeId=00032&pageNo=2&printNo=15516&publishType=00010|#]] 무라야마 총리는 이후 일본 의회 질의 과정에서 [[경술국치|국권강탈]]이 정치적, 도의적 평가와 별개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955790|법적으로는 유효하게 체결]]된 것이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으나, 이후 11월 19일에 다시 망언이었다고 사과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11500289101006&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11-15&officeId=00028&pageNo=1&printNo=2397&publishType=00010|1]][[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11900099101004&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5-11-19&officeId=00009&pageNo=1&printNo=9274&publishType=00010|2]][[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11900209106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11-19&officeId=00020&pageNo=6&printNo=23030&publishType=00010|3]] 다만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여기서도 국권강탈이 불법이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의 의견을 요약해보면 제국주의 시절 불평등 조약이었고 식민지배가 당시 일본의 명백한 잘못이었다고 인정은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법적으론 효력이 있었다는 주장인 듯하다. 사실 대한민국내에서도 민사 소송 등을 보면 어떻게 저런걸 인정해주냐 싶은 것도 재판관 성향에 따라 계약은 계약이니 법적인 효력은 인정해줘야 되지 않냐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류의 주장인 듯하다.[* 이후 일본 정부도 이런 견해와 크게 입장이 다르진 않아보이는데, 그러다보니 도의적 보상과 법적 배상 사이에서 한일 양국 분란이 계속되는 측면도 있다. 한편, 이에 대해 다른 나라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다. 2001년 열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1051&cid=43667&categoryId=43667|유엔 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에선 식민 지배의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다는 구 식민지배국이 막상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는 요구에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08&aid=0000018421|반발]]하였고, 끝내 식민 지배의 법적 책임은 인정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미국의 경우 이스라엘을 인종차별국가로 규정하려는 중동국들의 움직임에 반발해 이 행사가 잘못된 대립과 반유대주의를 담고 있다며 대표단을 철수했다.) 사실 법적 책임 인정에 대한 [[반동]]으로 역사왜곡이 활발해진 측면도 있는 것을 볼 때(물론 그렇다고 역사왜곡이 옹호되는 것도 아니지만), 무라야마의 행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있다. 실제 당시 무라야마는 사회-자민 연립 정권의 총리였다.][* 이는 전후 세계 질서를 지금도 상당수는 과거 제국주의 열강 출신국들이 주도하고 있고, 반대로 이들 국가들에게 피해를 본 식민지 출신 국가들 중에선 한국과 중국, 인도 등 일부 특수 사례들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가 드물기 때문인 점도 있다. 그나마도 중국은 땅덩어리가 너무 큰 나머지 한국처럼 전 국토를 장악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보다는 [[중일전쟁]]에서의 전쟁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고, 한국은 아직까지는 지속적으로 일본에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삼각연합의 일원으로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라는 분위기 속에 일본에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 역시 과거 영국의 식민지 출신이기는 하나, 지금은 혈맹--을 넘어 미국의 동생--이고 또 애초에 영국 출신이 많았던 점 등 이런저런 이유로 논외다.] 21세기 들어선 세월도 많이 흘렀고, 다른 담화들도 발표되면서 내용을 일일이 세세하게 따지기보단 그래도 총리가 사과했다는 대승적 측면에서 '''국내 언론 등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편으로 보인다. 다만 [[고노 담화]] 등에 비하면 언론에서도 언급 빈도 자체가 꽤 적은 편이라 담화의 '''인지도 자체가 떨어지는''' 문제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